시즌제 블로그를 할까 고민중입니다. 이것저것 난잡한 블로그에 어느 주제도 없고, 여러가지 관심사는 많은데 그에대한 꾸준한 포스팅 능력도 없고, 따라서 꾸준히 찾아주시는 분들도 없고, 당초엔 고립된 나만의 블로그를 갖고 싶었지만 활동이 왕성한 블로거들을 보니 욕심이 나네요.
그래서 시즌제 블로그를 할까 생각중입니다. 각 시즌마다 관심사를 주제로 10~20개정도의 포스팅을 하는방향으로 잡았는데. 지금은 시험기간이고 조금 자료도 모으고 충전좀 해야할 것 같습니다.
얼마 전 신문에 난 한 광고를 보았습니다. 광우병사태와 소고기 협상에 대한 정부의 대응과 입장에 정부에게 재협상을 촉진하고 진실을 잘 모르는 일반 국민들에게 광우병사태의 위험성을 알리는 것이 목적인 광고였습니다.
소울드레서라는 다음카페를 아시나요?
소울드레서카페란 다음의 거대카페였던 베스트드레서의 난잡한 사건으로 인해 환멸을 느낀 몇몇회원들이 따로 카페를 만들어 운영하고 있는 곳으로 주로 패션과미용에 관한 카페.
신문광고 이야기를 하다가 왜 갑자기 카페이야기를 하느냐구요? 눈치 채셨겠지만 바로 그 광고의 광고주가 소울드레서의 회원들이었단 것입니다.
이 사진들이 각각 한겨레신문과 경향신문에 실린 소울드레서광고입니다. (클릭하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5월 17일 한겨레신문 1면 광고
5월 19일 경향신문 1면 광고
신문사의 주 수입원은 무엇일까요? 우리가 내는 구독료 일까요?
바로 어마어마한 광고비가 신문사를 유지해주고 있죠. 그 광고가 없다면 대한민국 어느 갑부가 신문사를 차려도 곧 망할 것은 뻔한 이치입니다. 경향신문, 한겨레신문, 동아일보, 중앙일보를 모두 구독해본 경험자로서 제가 본 경향신문과 동아일보의 차이는 무엇보다 두께였습니다.(두 신문을 같은 시기에 구독했기 때문에 이 둘만 비교해 봅니다.) 처음엔 동아일보의 내용이 더 많은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실상은 과장조금보태 페이지 걸러 하나씩있는 전면광고들이 아주 큰 몫을 해내더군요. 게다가 소위 찌라시라고 하죠. 그 양 또한 엄청납니다. 동아일보는 아침에 받으면 꼭 그 안의 찌라시 버리는게 일이었으니까요.
더구나 그 광고주들의 대부분은 대기업이 차지하는데요.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 하는건 단연 삼성이라는 기업입니다. 그러니 삼성에게 잘 보여야 신문사도 먹고사는 그런 구조가 형성된 것이죠. 때문에 일반적으로 양심 있는 언론이다 하는 언론매체-경향신문, 한겨레신문, 시사IN등-에는 삼성광고가 거의 없습니다.
이런 신문사의 생리를 잘 아는 소울드레서 회원들은 광우병사태의 위험성을 국민들에게 알리면서 양심있는 언론을 후원하자는데 의견을 모읍니다. 그래서 위의 광고가 탄생하게 됩니다. 광우병사태의 위험성을 국민들에게 알리는데에만 목적을 두었다면 우리나라 70%를 차지하고 있는 조.중.동에 싣었어야 더 효율적이었겠죠.
저는 이런 일련의 사건들을 보며 1974년 동아일보 백지광고사태를 떠올렸습니다.
1974년 동아일보의 백지광고사건을 아십니까?
전 사실 잘 모릅니다. 몇년 전 어느 다큐멘터리를 우연히 알 게 되었고, 어머니에게 물어서 대충 알고 있을 뿐이었습니다. 그 당시 굉장한 이슈였던지 어머니도 성금을 보냈었고, 당시 기사들을 스크랩까지 해 놓으셨다고 합니다. (어머니께서 스크랩하신걸 보여주시려 찾다 결국 찾지 못했긴 하지만요.)
제가 알고 있는 백지광고사건은 대략 이렇습니다.
유신정권의 언론탄압으로 동아일보 기자들이 일어섰고, 그에 대해 유신정부의 광고주 탄압으로 광고주들도 동아일보에 등을 돌리게 됩니다. 그래서 백지광고가 나가게 되었고, 시민들의 격려가 쏟아지며 동아일보에 성금을 내겠다고 줄을 서게 되죠. 그래서 백지광고는 시민들의 이름이나 격려의 글, 지식인들의 시 등을 싣게 됩니다. 그러나 결국 사측의 굴복으로 기자들은 해고를 당하고, 그길로 지금까지 동아일보는 정부의 기관지로 전락합니다. (아, 지난 10년은 아니었겠군요. 그러고 보니 지난 5년은 그 누구보다도 정부를 씹는 ‘비판적인’언론이었군요!)
첫 백지광고 모습
동아일보 백지광고 사건으로인해 광고가 없어지자 광고면을 시민들의 후원으로 채운 모습
고경태 한겨레21 편집장이 27일 발매된 한겨레21(4월4일자) 권두칼럼에 이렇게 요약을 했습니다..
"1974년 10월24일 동아일보와 동아방송의 기자·PD·아나운서들이 동아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동아투위)를 결성하고 유신정권에 맞서겠다는 자유언론실천선언을 합니다. 이런 움직임이 언론계로 퍼지자 하루아침에 동아일보와 동아방송의 기업 광고가 끊깁니다. 백지가 돼버린 광고면을 독자들이 자발적인 격려광고로 채웁니다. 위기를 느낀 동아일보 사주는 기자들을 해직하고, 마지막까지 항의농성을 벌이던 이들을 폭력배를 동원해 쫓아냅니다. 이때 134명이 잘렸습니다. 그날이 1975년 3월17일입니다."
2008년 양심있는 언론과 그들의 양심에 힘을 싣고 올바른 정보를 알리고자 하는 소울 드레서 카페인들의 뜨거운 후원행렬과1974년 유신헌법에 맞서 기자의 양심을 지키고자 펜대를 쥔 동아일보의 기자들과 그들을 향해 뜨거운 지지를 아끼지 않았던 시민들의 후원행렬. 어째 많이 닮아 보이지 않습니까?
35년 전 동아일보의 백지광고 사건의 촉매제가 된 사건은 언론의 보도태도에 불만을 품은 학생들이 동아일보 앞에서 동아일보를 불태우는 시위였습니다.
얼마전 동아일보의 촛불시위에 의해 동아일보의 간판불이 꺼지는 일이 있었죠. 이 사건으로 인해 몇몇 아직 양심이 있는 조.중.동의 기자들이 초인처럼 들고 일어나 자신의 양심을 찾고 권력에 휘둘리지 않는 올바른 언론인이 된다는 생각은 단지 저의 판타지 영웅소설적 발상일 뿐일까요?
이번에도 소울드레서 회원들은 2차 광고성금 모집을 시작했습니다. 이번엔 저도 경향신문에 대한 소녀시절부터 쌓인 신뢰를 바탕으로 그들의 올바른 언론정신에 힘을 보태 줄까 합니다.
이렇게 우리가 하나씩 힘을 모은다면 지금은 브레이크가 고장난 자동차를 타고 내리막길을 내달리지만 그 자동차를 멈춰줄 '강력한 슈퍼맨'이 나오지 않을까요.
8~9년전 꼬꼬마 시절에 처음 인터넷을 접했고, 가장 먼저 가입했던 곳이 Daum메일이었던 것 같다.
<오디션>의 네 주인공
당시 천계영의 <오디션>이라는 만화에 심취해 아이디도 류미끼 관련 아이디로 만들었던 것 같다. 그리고 두 번째로 접한 포털이 바로 네이버였다.
좋아하던 친구가 네이버메일을 사용했고, 당시 흥행했던 Send메일로 예쁜 웹카드로 늘 메일을 주고받았다. 언제한번은 그 아이가 마이홈을 개설을 했더랬다. 그 아인 <카드캡터 체리>를 무척 좋아했고, 체리가 좋아하는 청명이가 되고 싶었었나보다.
사실처음에 그 아이가 홈페이지에 초대했을 땐 -창명이의 홈페이지에 오신걸 환영합니다- 라는 문구에 놀랐었기 때문에....
<카드캡터 체리>의 청명
‘창명이가 누구야-_-? 얘 잘못 알려준거야?’
곧 창명=청명이었고, 그 아이의 홈페이지였다. 사실 당시 어린이들의 홈페이지는 별다른건 없었다. 호기심에 너도나도 만든 것이 대부분이었기에 자기 소개란엔 10문10답 혹은 30문30답등을 넣었고, 홈페이지의 대문은 항상 ‘누구누구의 홈페이지입니다~^^*’ 이런게 주류를 이뤘었다.
게시판이나 방명록은 지금의 싸이월드 방명록처럼의 기능을 했었지만 거의 그 기능을 하지도 못한채 잊혀졌다. 획기적인 라이코스의 게시판이 나왔기 때문에...
라이코스의 게시판은 당시 중고등학생들에게 인기가 좋았는데, 지금 싸이월드 게시판을 다수의 사람이 사용할 수 있다는 점으로 이해하면 좋을 듯 싶다.
인기가 얼마나 좋았던지 각종 배경, 소스, 더 예쁘고 세련되게 꾸미는 법등을 전문적으로 제공하는 게시판까지 무궁무진하게 난림하던 라이코스게시판의 춘추전국시대라 할것이다. 내 기억속에 가장 예뻣던 배경으로 기억나는건 전지현과 조인성의 2%부족할 때 CF스틸컷으로 만든 배경인듯 싶다.
(전지현의 극강미모가 최절정을 달했던 시기)
그 때 라이코스의 선전엔 보챙도 나왔었다. 앞의 개와 함께 "잘했어~ 라이코스"라는 문구도 참 유행이었다.
그 뒤 라이코스의 대대적인 게시판 개혁으로 인해 많은 게시판 사용자들이 등을 돌렸고, 승승장구 하던 라이코스도 어떤 이유에선지 눈에 안띄게 되었다. 지금은 어떻지? 덕분에 게시판을 꾸미러 많이 들어갔던 소스사이트들도 어떻게 됬는지 가본 적이 없다.
(라이코스에 들어가보니 구글형식으로 바꾼것 같다. 티스토리와 연계되어 있는것도 같고, 음,, 대충 봤을때 깔끔한 것 같은데.. 우리의 추억은 완전이 사라졌구나.)
현재의 라이코스
돌아와서, 소소한 초중딩시절의 사건들이 지금은 추억이 되어 이렇게 넋두리를 하고 보자니 세월이 유수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 땐 마냥 신기하고 이것이 영원할 줄만 아니 영원이고 뭐고 생각지도 못할만큼 그냥 마냥 신기하기만 했던 인터넷이 이렇게 발전하고, 또 나도 이렇게 커서 벌써 옛 추억이라고 떠들고 있는거 보니 가짢기도 하고, 웃음도 난다. 언젠간 티스토리의 블로그도 이렇게 추억하는 날이 올까?
핀란드인에 대해 재미있으면서도 유익하게 책이 구성되어 있는 듯한 느낌을 받으며 이 책을 얼른 읽어보아야 겠다는 생각이 들무렵 쌩뚱맞게도 '실용주의를 최고의 가치로 내건 수도 헬싱기에서 ~!$^(^*&*#&^!' 라는 구절을 읽고 '엥...뭥미-?'라는 생각이 문뜩 들었습니다.
역시 사람마음은 거의 비슷한가 봅니다. 댓글들도 그 부분을 지적하고 있더군요.
스크롤을 올려 출처를 보니 역시 조선일보였습니다. 댓글들 중 같은 책인데 다르게 소개한다며 링크를 걸어 두었길래 링크(한국일보리뷰)를 따라 가서 읽어보니 새삼 언론이 이런식으